‘The Decade Fashion Learned to Be Quiet’
1980년대 패션을 떠올리면 모든 것이 크다. 어깨는 넓었고, 머리는 부풀었으며, 색과 장식은 넘쳤다. 하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분위기는 빠르게 달라졌다.
1990년 경기 침체와 함께 지난 10년의 과시적인 분위기가 힘을 잃기 시작했고 패션 역시 갑자기 조용해졌다. Calvin Klein, Jil Sander, Helmut Lang 같은 디자이너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Vogue는 당시의 변화를 1980년대의 과잉에서 벗어나 검정, 흰색, 네이비, 단순한 셔츠와 슬립 드레스 같은 새로운 유니폼으로 이동한 시기로 설명한다.
그 중심에는 슬립 드레스가 있었다.

원래 속옷에 가까웠던 얇은 드레스가 어느 순간 가장 현대적인 외출복이 되었다. Calvin Klein의 1994년 컬렉션에서 등장한 실크 슬립 드레스들은 몸에 무언가를 더하는 대신 몸의 선을 그대로 따라갔다.
MoMA 역시 이 컬렉션을 당시 미니멀리즘의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순간으로 평가한다.
흥미로운 건 이 옷들이 ‘꾸미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장식 대신 재단이 중요했고, 컬러 대신 소재가 중요했다. 옷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대신 사람이 먼저 보였다.
Kate Moss가 얇은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나타났고, Carolyn Bessette-Kennedy는 셔츠와 롱스커트 혹은 청바지와 코트를 입고 뉴욕 거리를 걸었다.
그들의 스타일에는 공통적으로 “오늘 무엇을 입었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 같은 태도가 있었다.
1990년대 미니멀리즘이 지금까지 반복해서 돌아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유행을 타지 않는 옷이란 사실 특별한 옷이 아니라, 입은 사람이 옷보다 먼저 보이는 옷일 것이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가장 현대적으로 보이는 패션 중 하나가 여전히 흰 셔츠와 검은 드레스라는 사실은 꽤 재미있다. 슬립 드레스 역시 1930년대의 란제리 드레싱에서 1990년대 그런지와 미니멀리즘을 거쳐 계속 살아남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