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피하려고 만든 코트가 가장 멋진 옷이 되기까지

트렌치코트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100년도 넘은 옷인데 좀처럼 ‘옛날 옷’처럼 보이지 않는다. 흰 셔츠 위에도 어울리고, 후디 위에도 어울리고, 정장을 입은 사람과 청바지를 입은 사람 모두에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처음부터 멋을 위해 만들어진 옷은 아니었다. 출발점은 날씨였다.

1879년 Thomas Burberry는 당시 흔했던 고무나 왁스 소재의 무겁고 답답한 방수복을 대신할 수 있는 gabardine을 개발했다. 가볍고 통기성이 있으면서 비와 날씨를 견딜 수 있는 직물이었다. 그리고 1912년 Burberry는 트렌치코트의 전신으로 평가되는 Tielocken coat를 특허 등록했다.

곧이어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이때 우리가 지금 트렌치코트의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대부분 기능이었다. 어깨의 에폴렛은 장교 계급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었고, D링에는 장비를 달았으며, 건 플랩은 몸을 보호했고, 등의 스톰 실드는 빗물이 흘러내리도록 만들어졌다.

즉 트렌치코트에서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 디테일들은 처음에는 장식이 아니었다.
필요해서 존재했던 것들이다.

그리고 아마 그래서 이 옷이 오래 살아남았는지도 모른다. 패션을 위해 만들어진 장식은 시간이 지나면 유행이 끝나지만, 기능에서 만들어진 형태는 쉽게 낡지 않는다.

전쟁이 끝난 뒤 트렌치는 군복에서 도시의 옷으로 이동했다. 허리를 벨트로 느슨하게 묶거나, 칼라를 세우거나, 단추를 잠그지 않은 채 입기 시작하면서 같은 코트가 사람마다 전혀 다른 인상을 만들었다. Burberry 역시 트렌치가 군사용 보호복에서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으로 변화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원래의 에폴렛, 스톰 플랩, 벨트 같은 구조를 유지하면서 실루엣만 계속 변주된다.

그래서 좋은 트렌치코트에는 유행하는 법이 별로 없다. 조금 구겨져 있어도 되고, 벨트가 완벽하게 묶이지 않아도 되고, 소매가 조금 길어도 된다. 오히려 너무 정확하게 입었을 때보다 조금 흐트러졌을 때 더 멋있다.

100년 전 군인의 장비였던 옷이 지금도 옷장 한쪽에 걸려 있는 이유. 어쩌면 클래식이라는 것은 오래된 디자인이 아니라, 더 이상 고칠 이유가 별로 없는 디자인인지도 모른다.

OLD FASHION NOTE
Gabardine · Storm flap · Epaulettes · Loose belt · Turned-up collar

Some clothes become old.
Some clothes simply become classics.

Old Fashion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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